기념일을 의무처럼 챙기는 시대는 지났다는 분위기가 짙다. 발렌타인데이도 예외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기념일 의무 소비가 줄었다는 체감, 초콜릿 선물 문화의 퇴조 같은 이야기가 이런 시선을 키웠다. 하지만 유통 현장의 숫자는 정반대를 가리킨다. 편의점 CU의 지난해 발렌타인데이 매출은 전년 대비 11.6% 증가했고,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는 최근 3년간 발렌타인 당일 매출이 전일 대비 매년 두 자릿수씩 뛰었다. 올해는 여기에 토요일 배치, 5년 만의 설렌타인, 대학 졸업 시즌까지 겹치면서 2월 한 달이 통째로 대목이 되고 있다.
초콜릿 대신 굿즈, 소비 공식이 바뀌었다
소비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형태가 바뀐 것이다. CU에 따르면 지난해 발렌타인 시즌에 1만원 미만 저가 상품의 매출 비중은 전년 대비 9%포인트 넘게 줄었지만, 1만~2만원대 중가 상품은 6%포인트 이상 늘었다. 캐릭터 IP를 활용한 차별화 상품 매출은 20.5% 증가하며 전체 실적을 끌어올렸다. 먹고 사라지는 초콜릿 대신 텀블러, 파우치, 키링 같은 '일상에 남는 선물'이 주력이 된 것이다.
편의점 4사는 올해 이 흐름에 더 무게를 실었다. GS25는 몬치치·플레이브 등 캐릭터 IP 선물세트를 내세운 '달콤페스티벌'을, 세븐일레븐은 헬로키티·위글위글 등 120여 종의 기획상품을 내놓았다. 업계 관계자는 "연인 중심의 선물에서 벗어나 친구·동료·가족까지 아우르는 소비가 확대되면서 가격대와 상품 구성이 한층 세분화됐다"고 전했다.
토요일 발렌타인, 하루 종일이 매출 창
올해 발렌타인데이는 14일 토요일이다. 평일이었다면 퇴근 후 저녁 2~3시간에 집중됐을 소비가 브런치부터 디너까지 하루 종일로 펼쳐진다. 아웃백의 최근 3년 발렌타인 당일 매출 증가율이 평균 약 30%인데, 이마저 평일 기준 수치다. 토요일 효과가 더해지면 올해는 그 이상도 기대된다.
대형 레스토랑은 이미 예약이 마감된 곳이 많아, 예약 없이 '근처 괜찮은 곳'을 찾는 주말 특유의 소비가 동네 맛집과 로컬 카페로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 호텔 업계도 주말 체류 수요를 노리고 웨스틴 조선 서울, 메이필드호텔 서울 등이 시즌 한정 패키지를 내놓았다.
설렌타인 5년 만의 귀환
설 명절과 발렌타인데이가 겹치는 '설렌타인'도 2021년 이후 5년 만에 돌아왔다. 가족 선물과 연인 선물이라는 두 소비 동기가 동시에 작동하는 시기다. 2021년 당시 롯데백화점 디저트 선물세트 매출은 전년 대비 90% 폭증한 바 있다.
롯데백화점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디저트 선물세트 품목을 2배 이상 확대했고, 잠실점에서는 12일부터 15일까지 발렌타인 팝업스토어를 운영한다. 파스쿠찌도 지난해 조각 케이크 판매량이 80% 넘게 증가한 흐름을 이어 시즌 한정 케이크를 출시했다.
발렌타인 뒤에는 졸업 시즌이 기다린다
2월의 소비력은 발렌타인데이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울대학교 학위수여식이 2월 25일로 잡혀 있는 것을 비롯해, 국내 대학교 졸업식은 대부분 2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집중된다. 졸업식은 곧 가족 단체 외식이다. 졸업생 본인과 부모, 조부모까지 함께 움직이며 외식·카페·꽃다발 수요가 한꺼번에 발생한다.
실제로 샤브올데이는 올해 2월 들어 졸업 관련 단체 예약 문의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고,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은 졸업생 동반 가족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3월 말까지 운영 중이다. 2월은 발렌타인 장미 수요와 졸업 축하 꽃다발 수요가 겹치면서 화훼 업종의 연중 최대 성수기이기도 하다. 소상공인에게 2월은 하루짜리 이벤트가 아니라 2주 이상의 연속 대목이 되는 셈이다.
준비한 만큼 돌아오는 2월
이번 발렌타인데이는 '시들해진 기념일'이라는 인식과 달리, 매년 두 자릿수 매출 성장이 확인된 검증된 대목이다. 토요일 배치로 소비 시간이 하루 종일로 확장되고, 설렌타인 효과가 디저트 시장에 불을 붙이며, 대학 졸업 시즌이 외식·화훼 수요를 이어받는다. 하루짜리 이벤트가 아니라 2주 이상의 연속 소비 시즌으로 바라볼 때, 2월의 진짜 크기가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