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이 독립운동가의 유묵으로 소개한 붓글씨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작품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믿고 작품 앞에서 무릎을 꿇은 유족의 사연까지 알려진 터라 국립중앙박물관의 검증 실패를 둘러싼 파장이 커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2일 유홍준 관장 명의의 사과문을 내고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전시한 박원근의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을 지난 10일 철수했다고 밝혔다.
‘일반시국은’은 임진왜란 당시 의승병으로 활동한 영규대사가 남긴 것으로 전해지는 말로, ‘한 그릇의 밥도 다 나라의 은혜다’라는 뜻이다. 박물관은 이 글씨를 충북 보은 출신 독립운동가 박원근(1912~1950)이 쓴 작품으로 소개했다.
박원근은 항일 비밀결사 삼인회와 신인구락부에서 활동하다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다. 1950년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숨진 뒤 유족에게는 그를 기억할 만한 유품이 거의 남지 않았다.
박원근의 아들 박용현 씨는 지난달 25일 아들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박씨는 76년 만에 처음 만난 아버지의 친필이라고 믿고 전시장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당시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것 같았다”며 작품을 보존한 소장자와 전시를 마련한 박물관에 감사를 표했다.
박씨가 글씨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오열하는 사진은 ‘76년 만에 찾은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흔적’이라는 사연과 함께 온라인에서 빠르게 확산했다.
그러나 감동적인 사연은 보름여 만에 뒤집혔다.
지난 10일 제천뉴스저널 주은철 대표가 작품에 서명된 ‘박원근’이 독립운동가 박원근이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1874~1959)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다고 제보한 것이다.
혼동의 핵심은 이름이었다. 독립운동가 박원근의 한자 이름은 ‘朴源根’이다. 그런데 박중양도 ‘원근(源根)’이라는 자를 사용했다. 성까지 합치면 두 사람 모두 ‘박원근(朴源根)’으로 표기될 수 있는 셈이다.
박중양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와 고문, 황해도지사, 충청북도지사,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 등을 지냈다. 1919년에는 3·1운동을 억누르기 위한 자제단을 조직했으며, 정부 조사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해당 작품이 2019년 한 미술품 경매에서 독립운동가 박원근의 유묵으로 출품된 이력을 토대로 전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작품의 전래 경위와 필체, 서명, 인장 등을 충분히 교차 검증하지 못한 채 경매 당시의 작가 정보를 전시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물관은 “전시품의 검증 절차가 미흡했음을 반성한다”며 “앞으로 유물의 내력을 다각도로 교차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선조의 유물로 알고 예를 올렸던 애국지사 박원근 유가족이 겪었을 혼란과 상심에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사과했다.
현재 작품의 실제 작성자는 확정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작품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전문가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최종 감정 결과와 별개로 국립박물관의 이름을 믿었던 유족에게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상처가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믿고 고개를 숙였던 사진이 결과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것으로 의심되는 글씨 앞에서 예를 올린 장면이 됐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전시 설명문의 오기를 넘어선다.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의 검증이 한 유족의 76년 그리움과 역사적 기억을 뒤바꿔 놓은 사건이라는 점에서, 정확한 감정 결과와 전시품 선정·검증 과정의 투명한 공개가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