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과 동시에 우량 신용등급과 저금리 대출이 사라지고, 연 15%가 넘는 카드론과 단기 리볼빙이 그 자리를 채운다.
19일 공영방송 KBS 1TV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한 방송인 김선근 씨 부부의 사례는 퇴직 후 금융 절벽의 전형적인 전이 경로를 보여준다. 대형 방송사 재직 당시 낮은 금리로 받은 직장인 신용대출과 투자 손실, 아파트 청약 자금 수요가 겹친 상태에서 회사를 나왔지만 독립 후 3개월 만에 현금 흐름이 마비됐다.
소득 증빙이 어려운 1인 사업자·프리랜서 신분으로는 1금융권의 대환이나 추가 대출 창구가 사실상 닫혔다. 생활비와 기존 원리금을 막기 위해 무소득 배우자 명의로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를 돌려막으면서 가계 빚은 8900만원까지 불어났다.
시중은행은 재직 중에는 미래 급여를 담보로 수억원대 마이너스통장과 신용대출을 내주지만, 퇴직 후 사업자 등록이나 프리랜서 전환 즉시 만기 연장을 거부하거나 한도를 깎고 높은 가산금리를 얹는다. 사업 초기 6개월~1년 이상 걸리는 소득 정착기에 현금 흐름이 흔들리면 차주는 곧바로 2금융권 카드론·캐피털·저축은행으로 밀려난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95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대출 잔액은 645조원으로 전체의 58.9%를 차지했다.
저축은행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12.79%까지 치솟았고, 카드·캐피털 등 여신전문금융회사 연체율도 3.98%로 10년여 만에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직장에서 가져온 고정 부채를 갚지 못한 채 창업에 나섰다가 내수 부진과 고금리가 겹치며 2금융권 부실로 전이되는 구조가 수치로 드러난 셈이다.
기존 창업 정책과 자영업 대책은 사업 공간 마련이나 기술 보증, 점포 인테리어 등 외형적 지원에 집중됐다. 반면 퇴직 차주가 겪는 개인 부채와 사업 부채의 혼선은 방치돼 왔다. 직장인 시절 신용으로 조달한 가계대출은 퇴사 후 사업 운영 자금이자 생계비로 전용되지만, 이들은 사업자 정책금융의 지원 대상에도 온전히 포함되지 못하고 가계부채 규제의 직격탄을 맞는다.
1금융권의 신용 평가 체계가 과거 소득 이력이나 잠재적 사업 역량보다 현재 재직 여부에 편중된 탓에, 전문 인력마저 퇴직 즉시 잠재적 불량 차주로 낙인찍히는 구조다.
김 씨 부부는 배우자의 전문 자격증을 통한 재취업과 야간 플랫폼 노동이라는 극단적인 인적 자본 투입으로 연쇄 파산을 간신히 피했다. 그러나 자영업 시장에 진입하는 일반 중장년 퇴직자 대부분은 이런 완충 장치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퇴직자가 자영업·프리랜서 창업 시장으로 넘어오는 관문에서 가계대출이 고금리 다중채무로 변질되는 속도를 늦추지 못하면 자영업 연체율 급등과 금융권 부실을 피하기 어렵다. 직장인 신용대출을 보유한 퇴직 예정자에 거치 기간을 부여하는 연착륙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나, 퇴직 후 사업 개시 1~2년 차 취약 차주를 겨냥한 저금리 전환 보증 같은 핀셋 금융 안전망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