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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 기계만 들여놓으면 저절로 굴러간다는 무인 점포의 환상은 신선식품 매대 앞에서 가장 먼저 깨진다. 허예선 이름없는 과일가게 대표는 29일 "무인 매장이어도 장사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결제 자동화와 운영 무인화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선식품은 산지 작황과 날씨에 따라 매입 원가가 매일 요동치고, 같은 상자 안에서도 과일의 크기와 숙도에 따라 판매 기한이 제각각이다. 인건비 절감만 보고 진입했다가 곪은 과일을 버리며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적지 않은 이유다.

허 대표는 간판조차 없던 노점 청과 판매로 출발해 현재 전국 17개 매장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본사로 키웠다. 2021년 7월 가맹 사업을 본격화한 뒤 매장 평균 면적 8~14평 안팎의 소형 점포를 유지하며 하루 70~300건을 판매하고 있다.

상품 구성이 눈에 띈다. 일반 무인 매장이 유통기한이 긴 가공식품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이곳은 과일 50%, 채소 35%로 신선식품 매출 비중이 85%에 달한다. 간편식 10%, 음료 3%, 기타 2%가 나머지를 차지한다.

신선도에 취약한 품목이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매장을 유지하는 비결은 폐기율을 틀어쥐는 소포장과 가격 다변화에 있다. 본사는 과일과 채소를 한 상자째 진열하는 대신 크기와 품질, 익은 정도에 따라 잘게 나눠 1000원, 1900원, 2500원, 2900원, 3900원, 5900원 등 촘촘한 가격대로 포장한다.

1인 가구나 소형 가구는 남겨서 버릴 염려 없이 필요한 만큼만 적은 금액에 살 수 있다. 점주는 과일 숙도가 빨라지거나 재고 회전이 더딜 때 포장 단위와 판매가를 낮춰 폐기 전에 물량을 털어낼 수 있다. 소포장이 곧 점포의 폐기율을 방어하는 직접적인 재고 통제 수단인 셈이다.

다만 이런 유연성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점주가 매일 아침 진열대를 살피며 상품 상태를 분류하고 손수 소분 포장해 적정 판매가를 매겨야 한다. 가맹비 500만원, 교육비 500만원, 인테리어 약 3500만원, 집기류 약 1500만원 등 점포당 약 6000만원 안팎으로 창업 문턱은 낮췄지만 운영까지 손쉬운 것은 아니다.

상주 직원만 없을 뿐 발주 수량을 가늠하고 진열과 청결을 유지하며 민원을 응대하는 관리 노동은 그대로 점주 몫으로 남는다. 무인 창업 열풍 뒤편의 방치형 운영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면 원가 계산조차 맞추기 어려운 구조다.

시스템 고도화도 이 노동의 비효율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회사는 매장 운영 관련 특허 2건을 확보하고, 고객이 온라인으로 미리 주문해 매장에서 찾아가는 자체 주문·픽업 시스템 '오더챗'을 구축했다. 예약 구매로 사전에 확보된 수요만큼만 정확히 입고시켜 재고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산지 시세와 소포장 원가, 부자재 비용을 자동 반영해 적정 소비자가와 예상 마진율을 계산해 주는 발주·재고 관리 체계와 인공지능(AI) 기반 수요 예측 시스템 도입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공간 활용에서도 고정비 부담을 낮추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단독 점포 출점 외에 앤드카페 같은 식음료 매장 내부에 과일 진열대를 들이는 샵앤샵 모델을 병행한다. 지난 9월 11일에는 외식 브랜드 료혼을 운영하는 요리연구소 혼신과 유통망 공유 협약을 맺고 양사 통합 22개 거점을 교차 판매와 물류 채널로 맞바꿨다.

신규 점포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유동인구가 확보된 거점에 농산물 판로를 빠르게 얹는 방식이다.

과제도 만만치 않다. 매장 수가 17곳을 넘어 전국으로 넓어질수록 점주 개인 숙련도에 기댔던 품질 선별과 소포장 작업의 표준화를 유지하기가 까다로워진다. 기상 이변에 따른 과채류 도매가 급등락과 계절별 수급 불안은 여전히 가맹점 마진을 압박하는 최대 변수다.

개발 중인 데이터 기반 자동 발주 시스템이 현장의 복잡한 변수를 얼마나 정확히 걸러내 폐기를 줄일지, 다른 업종과의 매장 공유 모델이 품질 관리 충돌 없이 지속될지가 이 사업 모델의 장기 생존을 가를 분수령이다. 기술과 기계는 결제라는 마지막 단계만 대신할 뿐, 신선도를 유지하고 손실을 막는 본질은 결국 매일 농산물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감각과 관리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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