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성 이미지.

전자계약 스타트업 모두싸인이 서명 도구를 넘어 계약 전 생애주기 관리(CLM)로 체질 전환에 나섰다.

모두싸인은 21일 AI 계약 관리 솔루션 '모두싸인 캐비닛'을 제조·유통, 외식·프랜차이즈, 공공기관 등으로 공급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회사는 2025년 12월 10일 창립 10주년을 맞아 기존 전자서명 플랫폼에서 CLM으로의 확장을 공언한 바 있다.

기업들이 전자계약을 도입하며 겪은 가장 큰 장벽은 이중 관리였다. 새 계약은 전자서명으로 처리해도 과거 종이 계약서는 여전히 캐비닛과 바인더에 남아 있었다. 실제로 상당수 기업의 전자서명 도입률은 전체 계약 문서의 20~30% 선에 머무른다.

캐비닛은 이처럼 파편화된 문서를 통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SPA 브랜드 탑텐을 운영하는 신성통상은 부서별로 흩어진 종이·전자문서를 통합해 특정 매장의 계약 원본 확인 시간을 종전 1시간에서 30초로 줄였다.

30여 개 계열사와 해외법인을 둔 바텍이우홀딩스는 자동 갱신 조항 추적을 통해 계약 갱신 대상 만료일 확인 시간을 30분에서 5분으로 단축했다. 종합 식음서비스 기업 본푸드서비스는 5개 본부와 37개 팀의 계약서를 일괄 관리하며 조직 개편 때마다 반복되던 문서 재배치 업무를 덜어냈다.

스타트업과 소상공인,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계약 분실과 갱신 누락 방지 효과가 두드러진다. 박승철헤어스튜디오는 가맹계약 체결 즉시 캐비닛에 자동 보관되도록 연동해 종이 계약서 분실을 차단했다.

외식 프랜차이즈나 대리점 체계에서는 가맹계약·식자재 공급계약·임대차계약의 갱신 시점을 놓쳐 원치 않는 자동 연장이나 위약금 분쟁에 휘말리는 일이 잦다. 전담 법무팀을 두기 어려운 중소 벤처기업이나 가맹 본부 입장에서 AI가 계약서 속 만료일과 갱신 조건을 읽어 사전 알림을 주는 기능은 비용 절감이자 법적 리스크 방어막이 된다.

공공·창업 지원 현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서울AI허브는 입주기업 계약서에서 호실별 정보와 계약 기간을 AI로 추출해 입주 현황 관리와 입주보육료 산정 업무까지 연동하고 있다. 기존에는 담당 직원이 엑셀에 입주 조건과 만료일을 일일이 옮겨 적었지만, 광학문자인식(OCR)과 언어모델로 문서를 구조화하며 운영 부담을 크게 줄였다.

삼육대학교도 엑셀 수기 입력에서 벗어나 단기 근로계약 만료 일정을 자동 추적해 인사 관리 오류를 줄였다.

이 같은 계약 운영 플랫폼으로의 진화는 SaaS 스타트업의 수익성 측면에서도 결정적이다. 단순 전자서명 서비스는 고객 1인당 평균 결제액(ARPU)을 크게 끌어올리기 어렵고 시장 점유율을 70% 안팎까지 확보해도 성장 한계에 부딪힌다.

반면 종이 계약서와 전자문서 전체를 아우르는 CLM으로 들어가면 법무·인사·영업·경영기획 등 복수 부서가 결합하는 전사적 워크스페이스로 격상된다. 제품 교체를 어렵게 만드는 락인 효과가 발생하고, 계약 건수 단위가 아닌 솔루션 구독료 기반으로 연간반복매출(ARR)의 질을 높일 수 있다.

해외에서는 아이언클래드(Ironclad)나 아이서티스(Icertis) 같은 CLM 전문 유니콘·데카콘 기업이 계약 관리 인프라 시장의 성장을 입증했다. 다만 한국 시장은 공공·금융권 중심의 강한 망 분리 규제와 한글 서식, 종이 문서 날인 관행이 여전히 깊게 자리 잡고 있다.

AI가 추출한 계약 조건의 법적 완결성을 얼마나 담보할 수 있는지, 민감한 계약 내용 유출을 막는 보안 체계를 공공·대기업 수준까지 충족할 수 있는지가 향후 확장 속도를 좌우할 과제로 꼽힌다.

전자계약 도입이 초기 편의성 경쟁을 지나 기업 데이터 자산화 경쟁으로 옮겨붙고 있다. 서명 버튼을 누르는 순간 끝나는 서비스가 아니라 서명 이후의 법적 일정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운영 체계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국내 기업의 디지털 전환 지형을 어디까지 바꿀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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