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세종청사.

글로벌 수술 로봇 시장이 연평균 약 9% 성장하는 가운데, 기술 추격에만 매달리는 국내 스타트업은 병원의 총소유비용(TCO) 장벽을 넘지 못하면 도태될 위기에 놓였다.

28일 의료기기 및 벤처투자 업계에 따르면 수술 로봇 시장은 2026년 90억5000만 달러에서 2031년 139억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정밀도를 앞세운 1세대 로봇 팔 복제 경쟁은 끝나고, 병원 운영 효율과 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피지컬 AI 기반 보조 기술이 차세대 격전지로 떠올랐다.

그동안 시장은 인튜이티브서지컬의 다빈치 시리즈가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으며 독점 생태계를 유지해 왔다. 장비 판매 후에도 고가의 전용 소모품을 계속 사야 하는 종속 구조 탓에 대형 병원조차 재정 부담을 호소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로봇 수술 상당수가 비급여로 묶여 환자 본인 부담이 크다. 수도권의 극소수 초대형 상급종합병원을 빼면 수술 건수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워 장비 감가상각과 고정비 회수가 불가능한 구조다.

서울아산병원이 누적 4만례를 돌파하고 고려대 안산병원이 올해 8월 누적 5000례를 달성했지만, 지역 의료기관과 중소 병원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인력과 수가, 비용 회수의 한계가 얽혀 있다.

이에 국내 스타트업은 다빈치가 장악한 집도의용 조종 콘솔을 그대로 복제해 정면 대결하기보다, 수술실에서 의료 인력의 물리적 공백을 덜어주는 보조 로봇과 특화 소프트웨어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표 사례가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추진하는 한국형 ARPA-H 프로젝트의 오케스트라(ORchestra) 과제다. 삼성서울병원이 주관하고 레인보우로보틱스, 에이딘로보틱스 등이 참여해 수술 도구 전달과 복강경 내시경 시야 유지, 조직 견인 등을 피지컬 AI 휴머노이드 로봇에 맡기는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지난 9월 16일 공개 시연에서는 음성 명령을 인식해 기구를 건네고 집도의의 움직임에 맞춰 내시경 각도를 보정하는 동작이 검증됐다. 전공의와 보조 인력 부족으로 수술실 가동률이 떨어지는 현장의 문제를 겨냥한 전략이다.

에이딘로보틱스는 정밀 힘·토크 센싱 기반 스마트 그리퍼와 로봇핸드를 결합하고,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이동형 양팔 로봇 플랫폼 RB-Y1을 공급한다. 스타트업의 특화 기술이 대형 병원의 임상 데이터와 결합해 상용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초기 투자 시장에서도 방향 전환이 뚜렷하다. 단순 하드웨어 제조 기업보다 수술실 행동 데이터를 축적해 워크플로우를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AI 융합 스타트업으로 모험자본이 몰리고 있다.

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스핀오프해 올해 7월 시드 투자를 유치한 수술 로봇 AI 기업 로소타가 대표적이다. 수술 중 영상과 기구 조작 데이터를 비식별화해 학습시키고 실시간으로 의사의 판단을 보조하는 AI 플랫폼이 벤처캐피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벤처캐피털 업계는 수술 로봇 스타트업을 평가할 때 기계적 스펙보다 병원 경제성을 얼마나 개선하는지를 우선순위에 두기 시작했다. 장비 크기를 줄여 기존 수술실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지, 모듈형 설계로 여러 진료과가 공동 사용해 유휴 시간을 줄이는지, 소모품 단가를 낮춰 비급여 부담을 덜어주는지가 핵심 심사 기준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모도르 인텔리전스는 수술실 간 이동이 가능한 카트형 플랫폼과 외래수술센터(ASC) 수요가 2031년까지 각각 연평균 9.73%, 9.88%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거대 장비를 전용 수술실에 두는 시대에서 필요할 때마다 유연하게 배치해 가동률을 높이는 경량 플랫폼 시대로 룰이 바뀌고 있다.

다만 국내 스타트업이 넘어야 할 파고는 낮지 않다. 인튜이티브서지컬은 촉각 피드백을 도입한 다빈치 5로 진입 장벽을 높였고, 메드트로닉과 존슨앤드존슨은 수술실 통합 플랫폼과 내비게이션 기술로 병원 락인 효과를 강화하고 있다.

반대편에서는 마이크로포트와 티나비 등 중국 제조사가 저렴한 기기 가격을 무기로 아시아와 신흥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하드웨어 가격 경쟁력으로는 중국을 이기기 어렵고, 브랜드 신뢰도와 임상 데이터 규모에서는 서구권 메이저 기업을 단기간에 넘어서기 힘든 구조적 샌드위치에 놓인 셈이다.

결국 국내 로봇 스타트업의 성패는 수술실 현장의 총소유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의료 사고 리스크를 방어할 임상적 안전성과 신뢰를 얼마나 빨리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소프트웨어 오작동이나 미세한 힘 조절 실패로 인한 환자 손상은 제조사에 막대한 법적 책임과 리콜 비용을 초래해 초기 스타트업을 한순간에 파산으로 몰 수 있다. 2029년 전후로 예정된 차세대 피지컬 AI 보조 로봇의 임상 진입 전까지 연구개발 자금을 버티려면 혁신의료기술 선진입 제도나 건강보험 수가 등 규제 당국의 유연한 지원책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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