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쇼핑 에이전트가 상품을 대신 고르는 시대를 앞두고, 상세페이지 데이터를 기계가 읽을 수 있게 규격화하는 기술이 커머스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초기 스타트업 전문 투자사 매쉬업벤처스는 4일 AI 커머스 테크 스타트업 테르밋에 시드 투자를 집행했다고 밝혔다. 투자 금액은 비공개다.
2025년 4월 설립된 테르밋은 AI 종합 마케팅 콘텐츠 에이전트 '크리에이지'를 서비스한다. 판매자가 상품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AI가 제품 특징을 분석해 상세페이지와 썸네일, 배너 이미지, 숏폼 영상을 3분 안에 일괄 생성한다.
크리에이지는 2025년 5월 베타 서비스를 거쳐 정식 출시된 지 10개월 만에 대규모 유료 마케팅 없이 1만5000곳 이상의 온라인 판매자를 고객사로 확보했다. 월 단위 손익분기점(BEP)을 넘기며 흑자 전환도 달성했다.
벤처캐피털 업계가 주목한 대목은 크리에이지가 구현한 상세페이지의 데이터 형식이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그동안 포토샵 등으로 만든 긴 통이미지 형태가 주를 이뤘다.
통이미지는 인간 소비자의 시선을 끌기에는 유리하지만, 이미지 안에 갇힌 텍스트와 규격 정보는 검색엔진이나 쇼핑 AI가 온전히 추출하기 어렵다. 광학문자인식(OCR)을 적용해도 배경 디자인 간섭과 폰트 왜곡으로 정보 누락과 오차가 잦았다.
반면 테르밋은 상세페이지를 단일 이미지가 아닌 하이퍼텍스트 마크업 언어(HTML) 기반으로 조립한다. 상품 설명과 핵심 성분, 용량, 규격, 인증 정보 등을 기계가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시맨틱 데이터 구조로 남기는 방식이다.
판매 성과가 검증된 5만 건 이상의 이커머스 마케팅 데이터를 학습한 복수의 멀티에이전트가 기획과 카피라이팅, 디자인 배치를 분업해 코드로 구현한다.
이런 차별화는 이커머스 생태계 변화와 맞물린다. 오픈에이아이와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가 소비자 명령에 따라 상품 검색·비교·결제까지 수행하는 자율형 쇼핑 에이전트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앞으로는 소비자가 직접 상세페이지를 스크롤하며 읽는 비중이 줄고, 개인화 AI 에이전트가 수만 개 상품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상품만 추려 추천하는 구조가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
이 환경에서 AI가 읽을 수 없는 통이미지 상세페이지는 추천 후보에서 배제되거나 뒷순위로 밀릴 위험이 커진다. 기계 판독이 쉬운 정형 코드로 상품 소구점을 명시한 판매자는 AI 비교 알고리즘에 정확히 반영돼 최종 추천을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테르밋을 창업한 김지성 대표는 의료 AI 스타트업에서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한 뒤 직접 향수 브랜드를 론칭하고 유통 사업을 운영했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쿠팡 등 채널마다 규격에 맞춰 상세페이지를 수정하느라 시간과 외주 비용을 낭비한 경험을 서비스에 반영했다.
다만 넘어야 할 벽도 있다. 네이버 쇼핑, 쿠팡, 오늘의집 등 플랫폼마다 허용하는 외부 HTML 태그와 스타일 시트(CSS) 규격이 제각각이다. 일부 플랫폼은 보안과 시스템 안정성을 이유로 외부 코드 삽입을 제한하고 자체 에디터 사용을 강제하기도 한다.
AI 쇼핑 에이전트가 상품 추천 시 HTML 텍스트 정보뿐 아니라 실시간 구매 후기, 배송 속도, 마진율, 광고비 집행 여부 등 플랫폼 내부 변수를 복합적으로 반영한다는 점도 변수다.
HTML 기반 코드가 검색 순위 상위권 진입과 구매 전환율 상승을 객관적 수치로 입증하지 못하면, 셀러들은 더 저렴한 일반 이미지 생성 도구로 돌아설 수 있다.
시드 단계에서 빠른 고객 유입과 월 단위 흑자를 이끌어낸 테르밋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유료 구독 모델의 유지율(리텐션)을 증명해야 한다. AI 쇼핑 혁명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판매자 결과물을 쇼핑 알고리즘 친화적인 표준 데이터로 엮어내는 기술적 독점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